광주비엔날레에서 ‘Taiwan’이라는 단어가 소동을 일으켰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에서 국립대만미술관의 전시 명칭을 ‘Taiwan Pavilion’으로 할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결국 이 명칭을 승인하자 중국관 참여자들은 철수했다. 중국 측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문제 삼았고, 한국 외교부는 문화예술 영역의 독립적 결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광주비엔날레 측도 이후 파빌리온 제도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1]

처음에는 오래된 양안 갈등이 미술관까지 쫓아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다.

**정치는 정말 밖에서 들어온 것일까.**

왜 비엔날레에는 애초에 ‘중국관’과 ‘대만관’ 같은 것이 있는가.

현대미술은 오래전부터 국경과 민족, 고정된 정체성을 의심해왔다. 이주와 난민, 디아스포라, 탈식민주의, 혼종성은 이제 현대미술에서 낯선 주제도 아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비엔날레에 도착하면 예술은 다시 나라별로 줄을 선다.

한국관. 독일관. 미국관. 중국관.

묘하게 올림픽 같다.

이 기묘한 형식에는 역사가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 시작됐고 최초의 외국 국가관은 1907년 벨기에가 세웠다. 1909년 헝가리·독일·영국, 1912년 프랑스, 1914년 러시아가 뒤따랐다. 지금도 베니스의 자르디니에는 각국이 지은 국가관들이 작은 국제사회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한국관은 1995년에 들어섰다. [2]

그리고 이 역사의 성격을 가장 솔직하게 설명하는 곳은 뜻밖에도 베니스비엔날레 자신이다.

비엔날레의 공식 역사자료는 국가관 방식을 19세기 만국박람회의 연장선에서 설명한다. 만국박람회가 식민제국의 힘을 과시했다면, 국가별 파빌리온은 20세기 국민국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다. [3]

그러니까 국가관은 현대미술에 우연히 붙어버린 행정 편의가 아니다.

태생부터 정치적이다.

그리고 이 오래된 기계는 아직도 잘 돌아간다.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에는 100개의 ‘National Participations’가 참가한다. 공식 참가 절차도 국가를 단위로 한다. 여러 국가관에서 문화부, 대사관, 국립미술관, 공공예술기관이 커미셔너나 운영 주체로 등장한다. 올해 한국관의 커미셔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다. [4]

심지어 베니스비엔날레에는 ‘Golden Lion for Best National Participation’, 최우수 국가 참가상도 있다. 2024년에는 호주가 받았다. [5]

그런데 바로 그 2024년 본전시의 제목은 《Foreigners Everywhere》,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였다.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이주민, 난민, 망명자, 디아스포라와 토착민을 전시의 중심에 놓았다. 국가와 영토와 국경을 넘나드는 인간을 들여다보는 전시였다. 같은 비엔날레에는 86개의 국가 참가가 있었다. [5]

한쪽에서는 국경이 만들어낸 ‘외국인’을 묻는다.

바로 옆에서는 86개 나라가 자기 이름을 걸고 전시하고, 그 가운데 한 나라가 최우수 국가 참가상을 받는다.

조금 과장하면 풍자극의 한 장면 같다.

**국경과 타자화를 문제 삼는 예술이 국가별 파빌리온 사이에서 전시된다.**

물론 여기서 국가의 지원을 받은 작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성급하다.

국가가 돈을 댔다고 국가를 칭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대학 교수가 정부를 비판할 수 있듯, 국가의 지원을 받은 예술가도 국가의 역사와 권력을 비판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자유로운 사회의 성취일 수 있다.

자기 국가를 비판하는 작품에 국가가 돈을 대고, 그 작품을 국가의 이름으로 세계무대에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문화적 세련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체제가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안정되어 있다는 신호**로도 읽을 수 있다. 자신을 향한 불편한 질문조차 제도 안에서 허용하고 지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역설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국가는 돈과 공간과 행정력을 제공한다. 예술가는 그 무대에서 국가와 국경을 의심한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비판을 허용하는 사회라는 사실에서 다시 문화적 위신을 얻는다.

**국가를 비판하는 예술을 국가가 선발해 국가관에 보낸다.**

이 장면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꽤 안정된 정치·문화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니 국가관이라는 제도를 단순히 낡은 국가주의의 잔재라고만 부르기도 어렵다.

그런데 광주에서 균열이 생겼다.

China Pavilion과 Taiwan Pavilion을 한 전시 안에 놓는 순간 비엔날레는 작품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국가인가, 누가 어떤 이름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가라는 정치적 질문도 함께 다루게 된다.

베니스에서는 그 사실이 제도에 더 노골적으로 새겨져 있다. 공식 참가 절차부터 국가를 단위로 하고, 국가별 파빌리온을 만들고, 국가 참가에 상을 준다.

미술제가 작은 국제사회의 모양을 갖추는 순간 국제정치의 골치 아픈 문제도 따라온다.

그런데 그 갈등이 현실이 되었을 때 “예술과 정치는 분리해서 봐달라”고만 말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이상해진다.

정치를 예술에 끌어들인 것은 외부의 항의만이 아니다.

**나라의 이름으로 예술을 조직한 형식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었다.**

국가관이라는 제도는 국가의 재정과 행정력을 이용한다. 국가는 그것을 통해 문화적 존재감을 얻는다. 예술가는 그 무대에서 국가라는 경계 자체를 의심할 수도 있다. 때로는 그 비판을 허용하는 능력마저 국가 시스템의 안정성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사실은 꽤 오래 서로를 필요로 해온 셈이다.

그래서 광주의 ‘Taiwan’ 소동은 중국과 대만의 외교 갈등만 보여준 사건으로 남지 않는다.

그 사건은 비엔날레가 120년 동안 안고 온 묘한 구조를 잠깐 드러냈다.

국경을 넘어가겠다는 예술과 나라별로 줄을 세우는 제도.

국가를 의심하는 작품과 그 작품을 후원하는 국가.

예술의 자율성과 국가가 제공하는 돈과 공간.

이것을 단순한 모순이라고 해야 할지, 오래된 타협이라고 해야 할지는 쉽게 결론내리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비엔날레에서 정치와 예술은 우연히 충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다.**

근거와 참고 자료

  • 참고 · [1] 광주비엔날레재단,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운영에 대한 입장」, 2026년 9월 2일. 광주비엔날레재단의 NTMoFA 관련 공식 설명과 참여기관 자율성·행정절차에 관한 입장을 확인했다. 중국관 철수와 파빌리온 제도 개편 발언은 2026년 9월 4일 연합뉴스 보도로 교차 확인했다.
  • 참고 · [2] La Biennale di Venezia, 「From the beginnings until the Second World War」 및 「Giardini della Biennale」. 베니스비엔날레 창설, 1907년 벨기에 국가관을 시작으로 한 국가관 건립, 현재 자르디니의 국가관 및 한국관 건립 연혁을 확인했다.
  • 참고 · [3] La Biennale di Venezia, 《The Disquieted Muses》, “From Nation States to a Global Biennale”. 국가관 전시 모델이 19세기 만국박람회에서 발전했으며, 당시 만국박람회와 국가관이 식민제국과 국민국가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구조였다는 비엔날레 자체의 역사적 설명을 참고했다.
  • 참고 · [4] La Biennale di Venezia, 「National Participations — Biennale Arte 2026」 및 국가 참가 절차. 2026년 100개 국가 참가, 국가 참가 자격 및 한국관을 포함한 각국 커미셔너 구성을 확인했다.
  • 참고 · [5] La Biennale di Venezia, Biennale Arte 2024 공식 자료 및 「Biennale Arte 2024: official awards」. 《Foreigners Everywhere》의 전시 취지, 86개 국가 참가 및 호주의 Golden Lion for Best National Participation 수상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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