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프로이트를 배운다. 이상할 것은 없다. 프로이트는 20세기 지성사를 뒤흔든 사람이다.

조금 이상한 것은 무엇을 배우느냐는 데 있다.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이 공개한 2025학년도 2학기 학위자격시험 가이드라인을 보면 상담교육전공의 ‘상담이론과 실제’ 시험범위에 **‘프로이트 심리성적 발달단계 특징’**이 들어 있다.

이 사례 하나만으로 한국의 대학 교육 전체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발달단계가 오늘날에도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학생이 특징을 익혀 설명해야 할 내용으로 남아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오래된 이론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문제일 리 없다. 과학사에서 천동설을 배우고 경제사상사에서 이미 힘을 잃은 이론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한다. 오히려 그래야 지금의 지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시제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구강기·항문기·남근기를 거친다고 **주장했다**”와 “인간은 구강기·항문기·남근기를 **거친다**”는 다른 문장이다. 앞은 프로이트에 대한 설명이고, 뒤는 인간에 대한 설명이다. 두 문장이 섞이면 우리는 어느새 한 사상가를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사상가의 눈으로 인간을 배우게 된다.

현대 심리학 교재는 이 차이를 비교적 분명하게 다룬다. 미국 대학에서 널리 쓰이는 OpenStax 『Psychology 2e』는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발달단계를 자세히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의 생각 대부분이 현대 연구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심리성적 발달단계를 성격 발달의 타당한 설명으로 보지 않는다고 적는다. 예일대 폴 블룸의 심리학 입문강의도 비슷하다. 프로이트의 역사적 영향은 크게 다루지만, 그의 이론의 한계와 논란에도 상당한 시간을 쓴다.

그러니까 배울 수 있다. 다만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무너졌는지도 함께 배워야 한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문학과 문화비평으로 가면 다시 팔팔해진다.

2021년 『현대정신분석』에는 영화 〈기생충〉의 등장인물을 정신분석의 개념으로 읽은 논문이 실렸다. 정신분석은 여기서 20세기 사상사를 연구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늘의 작품 속 인물과 욕망을 풀이하는 도구다.

여기서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해보자.

누군가 이제마의 사상의학으로 햄릿을 읽고 **「햄릿의 소음인적 내면성」**이라는 논문을 쓴다면 어떨까. 햄릿의 망설임, 감정의 기복, 인간관계를 소음인의 성정과 하나하나 맞춰볼 수 있을 것이다. 솜씨 좋은 연구자라면 제법 그럴듯한 글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물을 것이다.

**왜 하필 소음인인가.**

작품과 이론 사이에서 닮은 점을 많이 찾아냈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론이 햄릿을 더 잘 설명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이 익숙하다고 해서 질문을 면제할 이유는 없다.

물론 프로이트와 사상의학이 같다는 말은 아니다. 차이는 크다. 무엇보다 프로이트는 20세기 서구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작가와 화가, 영화감독과 지식인들이 그를 읽었다. ‘무의식’, ‘억압’, ‘리비도’ 같은 말은 전문용어의 울타리를 넘어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는 말이 됐다.

바로 그래서 프로이트는 중요하다.

다만 중요해지는 이유가 달라진다.

어떤 작가가 프로이트를 읽고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를 공부할 이유가 충분하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마음을 정확하게 밝혀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프로이트를 믿었고, 그 믿음이 실제 작품과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프로이트는 인간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기보다 인간이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을 바꾼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가까워진다.

이 구분은 비평에서도 중요하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프로이트와 함께 읽는 것은 그 작품이 태어난 시대와 생각의 계보를 추적하는 일이다. 반면 프로이트와 별 관계가 없는 작품에 정신분석의 틀을 씌운 뒤 인물의 ‘숨은 욕망’을 밝혀냈다고 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순간에는 왜 그 틀을 믿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래도 하나의 렌즈 아닌가”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렌즈는 될 수 있다. 우엘벡의 소설도 인간의 성과 경쟁을 보는 렌즈가 되고, 카뮈도 부조리라는 렌즈를 준다. 하지만 렌즈가 된다는 사실만으로 이론이 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모습이 보였다는 것과 실제로 더 잘 설명했다는 것도 같은 말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글 자체를 뛰어난 문장이나 독창적인 인간관으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이나 사상으로서의 평가다. 문장이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그 안의 심리학까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분석의 모든 후손이 과학 밖에 남아 있다는 뜻도 아니다. 현대 정신역동치료 가운데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을 대상으로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축적된 접근도 있다. 2023년 『World Psychiatry』에 실린 종합 검토도 우울장애·불안장애·성격장애·신체증상장애에서 정신역동치료를 근거가 있는 치료법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남근기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프로이트에게서 시작된 몇몇 질문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프로이트가 내놓은 답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다르다.

그래서 프로이트를 대학에서 빼자는 이야기는 싱겁다.

오히려 질문을 바꾸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인간은 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는가” 대신 “어떻게 20세기의 수많은 사람은 인간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믿음은 문학과 예술, 상담과 대중문화, 인간의 자기이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를 묻는 것이다.

그러면 프로이트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의 비밀을 풀어낸 사람이라기보다, **20세기 인간이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은 사람**으로 남는다.

프로이트를 그만 가르칠 필요는 없다.

다만 남근기가 아직 시험범위라면, 이제는 **시험문제를 조금 바꿀 때도 됐다.**

근거와 참고 자료

  • 참고 · 1.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2025학년도 2학기 학위자격시험 과목별 가이드라인」
  • 참고 · https://ed.sookmyung.ac.kr/bbs/ed/157/97267/download.do
  • 참고 · 2. OpenStax, Psychology 2e, “Lifespan Theories”, “Freud and the Psychodynamic Perspective”
  • 참고 · https://openstax.org/books/psychology-2e/pages/11-2-freud-and-the-psychodynamic-perspective
  • 참고 · 3. Paul Bloom, Yale Open Courses, Introduction to Psychology – Foundations: Freud
  • 참고 · https://oyc.yale.edu/psychology/psyc-110/lecture-3
  • 참고 · 4. 배선윤(2021), 「히스테리 주체의 몰락: 영화 〈기생충〉 주요 등장인물 분석」, 『현대정신분석』 23(1), 9–48.
  • 참고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86969
  • 참고 · 5. 김수민(2024), 「정신분석과 이야기 — 「모래 사나이」의 서사구조를 통해 바라본 정신분석적 해석」, 『독어독문학』 65(3), 25–48.
  • 참고 ·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3120747
  • 참고 · 6. Leichsenring et al.(2023), “The status of psychodynamic psychotherapy as an empirically supported treatment for common mental disorders”, World Psychiatry 22(2), 286–304.
  • 참고 ·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wps.21104
수정 기록
현재까지 공개할 중대한 수정이나 정정이 없습니다.